그래서 안 갔어. 근데 그 수업은 되게 좋은 수업이야. 그 쌤 역시 내공이 보통이 아니더라고. 한자리에서 같은 강의를 10년간했다는 건 어지간히 쉬운 일이 아니잖아. 근데 안 갔어. 마지막 수업이었고 뒤풀이도 예정되어 있었어. 과제는 제출하지 않았지만 유종의 미를 위해서라도 출석해서 자리를 지키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거야. 수강생 과제를 꼼꼼히 첨삭해 주는 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이어서 커리큘럼 이외의 알짜배기 팁들을 들을 수 있거든. 두 시간의 수업을 듣고 뒤풀이 자리에 갔다면 그동안 이름은커녕 얼굴도 다 익히지 못했던 다른 수강생들과 얘기도 나누고 쌤한테서 좋은 얘기들을 들었을지도 몰라. 나름 연말 분위기도 내고 맥주도 한 잔하고 좋았겠지. 근데 안 갔어. 수업 전 날이 휴일이라 모처럼 기운 내서 글을 ..
낮이었는데 비가 왔고 비가 올 줄 알았던 나는 들고나간 비닐우산을 펴들었다.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하는 바람에 길가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뒤적이다 유튜브로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의 뮤직비디오를 보았다. 자갈밭의 돌멩이가 부딪히듯 단단하고 맑은 첫 음에 단숨에 뺨까지 소름이 돋았다. 그 한기를 매만질 새도 없이 햇살 가득한 푸른 들판에서 하얗고 깨끗한 차림으로 춤추고 노래하는 긴 머리의 소녀들에게 빠져들었다. 그러다 불쑥 화면을 보는 눈에 집중되었던 피가 코 끝으로 몰려가며 찡-했다. 황당한 마음에 찡한 감각을 참아보았지만 그럴수록 코는 더 아팠다. 다물어진 입안에서 쪄진 듯 뜨거운 숨을 내쉬며 감정을 환기시켜보지만 이내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눈물은 솟았지만 떨구지는 ..
내 몸이 싫었다. 싫었다기 보다 ‘나’라는 존재 안에 몸을 포함시켜주지 않았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 중에서 내 몸이 제일 맘에 안 들었으므로. 그렇다고 내 몸을 내 마음에 들게 바꾸는 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생각만으로도 무기력해졌다. 대신 빠르고 간편한 정신승리 쪽을 택했다. 길 가다 지나치는 유리창에 나를 비춰보지 않았다. 몸에 대한 대화를 피했다. 내 몸이 아닌 척, 나는 몸이 없는 척, 두 손으로 내 눈만 간신히 가리고 살았다. 그동안 내 몸은 점점 커졌고 상했고 쓸쓸해졌다. 정신도 이상해졌다. 분명히 존재하는 무거운 몸을 하염없이 부정하고 외면하기엔 정신이 버텨내질 못했다. 늘 예민하고 스트레스가 가득 찼다. 어쩌면 아무도 주지 않았을 상처들을 능동적으로 빼앗아 들고는 스스로 상처 입었다. ..
옆사람은 미용실 의자에 앉아있는 동안의 멀뚱함이 싫어서 20대 중반 즈음부터는 제 손으로 머리를 다듬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 솜씨가 어쩔 수 없이 엉망진창이어서 같이 살기 시작한 후로는 내 손으로 다듬어 주고 있다. 처음엔 옆사람이 가지고 있던 미용가위 세트로 잘라주었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자연스럽게 길이를 맞추는 것도 머리숱을 정리하는 것도 생각과는 다르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미숙한 내 솜씨에 더해 뒤통수가 뾰족하게 툭 튀어나와 있는 남다른 두상과 그 뒤통수에 자리한 가마 탓에 어떻게 잘라도 바보 같아졌다. 옆사람은 ‘머리는 계속 자라니까 괜찮아’하며 불만족스러운 머리를 받아들였고 나도 ‘그래, 모자 쓰면 되니까’하며 넘겼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미안함이 커서 도서관에서 ‘이발 실무: 남성 커트..
회사는 도산공원 사거리에 있었다. 우리 집은 부천이고 비역세권이었어서 출근을 하는 데만 1시간 40분이 걸렸다. 업종은 ‘웹에이전시’. 회사의 아이덴티티는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쉽’이었고 회사 내에서 나의 아이덴티티는 ‘막내’였다. 회사의 규모는 작다. 직원은 겨우 일고여덟. 나를 빼고는 모두 실장, 이사, 차장, 팀장, 대리, 주임과 같은 직함이 있었다. 사무실의 월세는 월 350만 원이었고 회의실의 의자는 개당 50만 원이었다. 그것도 어느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을 모조한 가품이어서 그 값이라고 했다. 어느 날 실장은 ‘타이포그래피 아트’라며 노란색 바탕에 검정 글씨가 프린트되어있는 액자를 사다 사무실에 걸었다. 300만 원을 주었고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며 자신의 안목을 과시했다.평균 주 50시간 일..
부모님은 벌써 12년 전 졸혼을 하셨다. 지금에야 졸혼이라는 세련되고 합리적인 이름이 붙여졌지만 그때만 해도 거주지를 옮긴 쪽에게 ‘집을 나갔다’라던가 ‘도망 나갔다’와 같은폭력적인 수식이 붙던 때였다. 우리 가족의 경우 졸혼을 선언한 건 엄마였고 거주지를 옮겨 나간 것도 엄마였다. 내가 대학 신입생의 흥분된 일상을 보내느라 달콤한 피곤에 절어 살던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엄마 이제 나가 살 거야.” 짐을 싸고 있는 엄마를 ‘울면서 말려봐야 하나’ 싶었지만 그 어떤 가벼운 신파도 연출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았다. 아버지는 지방 출장이 잦았고 오빠는 군대에 있었다. 엄마는 떠났고 나는 남았다. 익숙했던 집은 한순간에 낯설어졌다. 엄마의 짐이 빠진 자리보다 엄마에게 선택받지..
둥근 얼굴, 작은 눈, 빵빵한 몸. 수더분하고 둔해 보인다는 게 민옥씨에 대한 첫인상이다. 민옥씨의 성격도 대개는 그런 외모에 부합한다. 그러나 민옥씨는 종종 악마같은 마음을 갖는다.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 속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고문하고 죽인다. 하지만 최근의 민옥씨는 자신의 악마같은 마음씨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이렇게 자주 악마같은 마음을 먹었다가는 진짜 악마가 될 것 같은 기분에 시달렸다. 언제 그런 악마같은 마음을 갖는지 민옥씨를 관찰해 보자. 민옥씨는 공공장소에서 무신경한 사람들을 불편해 한다. 지하철의 문이 닫히기 전 헐레벌떡 뛰어든 아저씨가 불편했다. 아저씨는 니코틴으로 샤워를 한듯 온몸으로 담배냄새를 풍겼다. 소매를 당겨잡아 코를 막는다. 탁해진 공기가 불편해 아저씨를 향해 페브리즈를 뿌..
“6년 됐어요.”“와, 어떻게 그렇게 오래 만났어요?”“글쎄 헤어지지 못해서?”“에이, 그게 뭐예요. 사랑하니까 만났겠죠.”“그냥 시간이 흘렀어요.” 종종 어떻게 6년을 만났느냐고 묻는 사람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적당한 이유를 찾기 위해 고심한다.그러나 그냥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그리고 그 시간들 속 갈등의 순간에 헤어지지 못했다. 사랑해 왔고 사랑하고 있지만 6년 동안 한시도 빠짐없이 사랑해 온 건 아니다. 내가 옆사람을 사랑하지 않은 순간들은 그가 경찰 공무원 시험에 매달렸던 시간들 속에 있다. 옆사람의 꿈은 경찰이었다. 사명감으로 무장된 정의로운 경찰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경찰 시험에 뛰어든 이후 아주 긴 시간 동안 실패했다. 경찰이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합격에 아..
몇 년 전 친하게 지내는 대학 선배가 자신의 외국인 애인에게 나를 소개했을 때의 일이다. “얘는 이름이 OO이고 쿨하고 유머러스해. 또 얘는 OO인데 되게 긍정적이고 밝아.” 그렇게 소개가 이어지고 내 차례가 왔을 때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얘는 민옥인데 Organize한 애야.” 알듯 말 듯 정확한 단어 뜻이 떠오르지 않아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서 그냥 웃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단어를 검색하니 뜻은 이랬다. 1. (어떤 일을) 준비하다. 2. (특정한 순서, 구조로) 정리하다, 체계화하다. 3.(일의) 체계를 세우다.[잡다] 과연 이런 단어로 사람의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는지 궁금하면서도 그 사람이 나라니 놀랐다. 또 뭔가를 들킨 것처럼 무안했다. ‘내가? 아, 하긴 나 조금..
배선생과 드라이브 중이었다. 외출에 나서기 전 별거 아닌 일로 투닥거린 탓에 차 안엔 적막이 흘렀다. 두시가 되었고 107.7에 맞춰져 있던 라디오에서 두시 탈출 컬투쇼의 오프닝 송이 흘러나왔다. “두시 탈출 컬투가 제일 좋아, 두시 탈출 컬투쇼는 재밌어요, 성대에 신들린 옥희 김태균, 짜증 버럭 대마왕 미친 소 찬우, 헐 이런 방송 어딨어, 컬투쇼 아하하하 하하하하하. 지금이니!” 발작적으로 컬투쇼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하는 장난감의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주먹을 쥔 양손을 번갈아 뻗어가며 엉덩이를 들썩이고 고개를 흔들어 댔다. 배선생의 곁눈질을 온몸으로 받으며 외운지도 모르게 외워져 버린 이 짧은 노래를 시작부터 끝까지 열창했다. 차마 웃어주기엔 마음이 덜 풀렸는지 배선생은 어이없는 눈빛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