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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생과 드라이브 중이었다. 외출에 나서기 전 별거 아닌 일로 투닥거린 탓에 차 안엔 적막이 흘렀다. 

두시가 되었고 107.7에 맞춰져 있던 라디오에서 두시 탈출 컬투쇼의 오프닝 송이 흘러나왔다.


“두시 탈출 컬투가 제일 좋아, 두시 탈출 컬투쇼는 재밌어요, 성대에 신들린 옥희 김태균, 짜증 버럭 대마왕 미친 소 찬우, 

헐 이런 방송 어딨어, 컬투쇼 아하하하 하하하하하. 지금이니!” 


발작적으로 컬투쇼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하는 장난감의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주먹을 쥔 양손을 번갈아 뻗어가며 엉덩이를 들썩이고 고개를 흔들어 댔다. 

배선생의 곁눈질을 온몸으로 받으며 외운지도 모르게 외워져 버린 이 짧은 노래를 시작부터 끝까지 열창했다.


차마 웃어주기엔 마음이 덜 풀렸는지 배선생은 어이없는 눈빛으로 콧구멍을 벌렁댄다. 

나는 뻔뻔한 눈빛으로 입을 삐죽 대며 역시 콧구멍을 벌렁인다. 

몇 초간 눈싸움하듯 마주 보고 있다가 “칫-”하거나 “쳇-”하고 고개를 젓는다. 


찌뿌둥하던 분위기는 금세 개운해진다. 

실은 곧 두시가 된다는 걸 알았고 라디오 주파수를 107.7에 맞춰두었고 방정맞은 오프닝 송을 기다렸다. 

삐진 척 정말 기분 나빴던 척 무게 잡고 있었지만 이렇게 까불기 좋은 타이밍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맥락 없이 발작적으로 까불곤 할 때면 배선생이 늘 하는 말이 있다. 

“너네 엄마 너 이러는 거 아시나?” 

이 말은 괴랄하게 까부는 내 모습에 놀란 것 반, 엄마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요상한 모습을 자기에게만 보여주는 것에 대한 

묘한 안도감이 반이다. 

그런데 이건 혼자만의 짐작이라 그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그 말뜻에 대해서 정확히 집고 넘어갈 생각은 없다. 

착각하면 좀 어떤가, 볼 꼴 못 볼 꼴 다 보인 사이에서 이 정도 망상쯤이야. 

더욱 신박하고 눈살 찌푸려지게 까불어서 계속해서 그를 놀래키고 또 안심시키고 싶다. 


아니나 다를까, 배선생은 잠시 멍하게 있더니 “너네 엄마 너 이러는 거 아시나?”한다. 

“아니, 우리 엄마 몰라, 우리 엄마 알면 기절할걸” 해놓고는 몰래 기분이 좋다. 




#에세이 #유즈풀 #그냥하고싶은것들의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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