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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감수성

가내 뷰티살롱

bl☺︎g 2018. 6. 2. 16:52

옆사람은 미용실 의자에 앉아있는 동안의 멀뚱함이 싫어서 20대 중반 즈음부터는 제 손으로 머리를 다듬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 솜씨가 어쩔 수 없이 엉망진창이어서 같이 살기 시작한 후로는 내 손으로 다듬어 주고 있다. 

처음엔 옆사람이 가지고 있던 미용가위 세트로 잘라주었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자연스럽게 길이를 맞추는 것도 머리숱을 정리하는 것도 생각과는 다르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미숙한 내 솜씨에 더해 뒤통수가 뾰족하게 툭 튀어나와 있는 남다른 두상과 그 뒤통수에 자리한 가마 탓에 어떻게 잘라도 바보 같아졌다. 


옆사람은 ‘머리는 계속 자라니까 괜찮아’하며 불만족스러운 머리를 받아들였고 나도 ‘그래, 모자 쓰면 되니까’하며 넘겼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미안함이 커서 도서관에서 ‘이발 실무: 남성 커트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빌려다 보기도 했다. 

하지만 기술을 글로 배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세상의 모든 기술자들을 리스펙하는 마음만 남았다. 

가위로 하는 커트의 한계를 느끼고 올 초에 이발기 세트를 마련했다. a.k.a 바리깡. 

이걸 사고 나서는 무려 투블럭을 흉내 낼 수 있게 됐다. 

머리의 양 옆면과 뒷면을 슥슥 밀어버리고 머리 뚜껑 부분은 위로 빗어 올려 길이를 다듬으면 꽤 그럴싸하다. 

사실 투블럭이 언제적 투블럭인가 싶지만 옆사람은 본인이 힙해졌다고 느끼며 만족스러워한다.


시원하게 머리를 다듬은 옆사람을 보면 낯설어진 모습에 마음이 설렌다. 괜히 뺨을 쓰다듬고 눈을 깊이 바라보면 옆사람은 이내 쑥스러워 한다. 

6년째 연애 중임에도 내 손길과 눈빛에 떨려 하는 옆사람의 마음이 고맙고 사랑스러워 나도 쑥스러워지고 만다. 

괜히 ‘오늘따라 더 못생겼네’하며 떨어진 머리카락을 치운다. 

그럼 옆사람은 괜히 방귀를 빵- 뀌고는 ‘그래서 이번 주 그것이 알고 싶다에 뭐 나오는데?’ 같은 소리를 한다.


우리의 연애가 시작될 즈음 옆사람은 나의 깔끔한 손톱을 보고 신기해했다.

 ‘손톱 위로 살이 안 올라오네? 나는 맨날 올라와서 맨날 트는데’하길래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큐티클 얘기였다.

 ‘무슨 소리야, 이렇게 깔끔하게 다니려고 얼마나 신경 쓰는데’하고는 선심 쓰듯 큐티클 제거를 해주었다. 

처음 받아본 손톱 손질에 옆사람은 아이처럼 좋아했고 자기 손,발톱이 100개씩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렇게 솔직한 소감이 또 있을까 싶었다. 나는 옆사람이 좋아하는 게 좋았다. 

그 후로 종종 그의 손,발톱을 다듬어 주었고 옆사람은 자주 돌아오지 않는 기회를 늘 고대했다.


몇 주전 밤이었다. 잠든 그의 옆에서 스탠드를 켜고 책을 읽고 있었다. 

뒤척이는 옆사람의 발이 내 다리를 스쳤고 나는 불쾌해졌다. 길게 자란 발톱이 내 다리를 긁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짜증을 부리며 발로 차버렸겠지만 고된 하루를 보내고 온 옆사람에게 그럴 수는 없었다. 

발톱 깎아준 지가 오래됐다는 생각에 발톱을 깎기 시작했다. 왼발을 먼저 깎고 오른발을 쥘 때 옆사람이 잠깐 뒤척였다. 

잠을 깨울 순 없는 노릇이므로 조심히 마저 깎았다. 

그러다 무심코 자는 그를 올려다보고는 웃음이 터졌다.


턱 끝까지 이불을 덮고 자던 그의 손이 이불 밖으로 나와 있었다. 

‘손톱도 깎아줘, 손톱 깎는 거 잊지 마, 손톱도 깎아줘 알았지?’라고 말하는 듯 두 손이 가지런히 나를 향해 있었다. 

잠결에도 발톱 깎아주는 걸 알고 혹여나 손톱은 깎아주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던 모양이다. 

그런 와중에 잠은 쏟아지고 몇 모금 남은 의식을 손을 내미는 데에 썼던가 보다.


목구멍에서 콩닥콩닥 애정이 끓더니 온 얼굴이 간지러웠다. 잠에서 깨거나 말거나 끅끅대며 웃고 얼굴에 얼굴을 부볐다. 

옆사람은 옅은 의식으로 내 뺨을 느끼고 미소 지었다. 

나는 아주 기꺼이 손톱을 깎았다. 깎은 손,발톱을 휴지에 잘 싸 버리고 손톱깎이를 정리하는데 옆사람이 말했다.

 “아, 손가락 발가락 100개였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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