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둥근 얼굴, 작은 눈, 빵빵한 몸. 수더분하고 둔해 보인다는 게 민옥씨에 대한 첫인상이다.
민옥씨의 성격도 대개는 그런 외모에 부합한다.
그러나 민옥씨는 종종 악마같은 마음을 갖는다.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 속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고문하고 죽인다.
하지만 최근의 민옥씨는 자신의 악마같은 마음씨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이렇게 자주 악마같은 마음을 먹었다가는 진짜 악마가 될 것 같은 기분에 시달렸다.
언제 그런 악마같은 마음을 갖는지 민옥씨를 관찰해 보자.
민옥씨는 공공장소에서 무신경한 사람들을 불편해 한다.
지하철의 문이 닫히기 전 헐레벌떡 뛰어든 아저씨가 불편했다. 아저씨는 니코틴으로 샤워를 한듯 온몸으로 담배냄새를 풍겼다.
소매를 당겨잡아 코를 막는다. 탁해진 공기가 불편해 아저씨를 향해 페브리즈를 뿌려대는 상상을 한다.
환승역에 내려 부지런히 역사 안을 걷고 있는데 커다란 백팩을 맨 사내가 민옥씨 앞을 가로질러 갔다.
그 탓에 민옥씨는 오른발만 내리 두번을 디뎠다. 마음 속으로 다리를 길게 뻗어 사내를 걸어 넘어뜨린다.
또 환승구간의 에스컬레이터 위였다.
오른쪽 서서가는 쪽에 서서 올라가고 있는데 파마머리를 한 아주머니가 앞사람과 민옥씨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섰다.
자신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을 보장받고 싶은 민옥씨는 불편했다.
좁은 자리에 선 아주머니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인형뽑기 기계의 집게로 아주머니를 뽑아내면 어떨까 생각한다.
민옥씨는 이렇게 소소한 것들이 너무나도 불편한데 너무나도 소소해서 상대에게 뭐라 말할 명분이 없는게 가장 속상하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인 진환씨에게 이런 감정을 털어놓는다.
민옥씨은 진환씨가 뭐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좋지만 그래서 가끔 진환씨를 죽이고 싶기도 하다.
민옥씨의 둥글고 작은 눈 속 악마같은 마음씨가 깃드는 걸 알아채는 것도 진환씨이기 때문이다.
진환씨는 민옥씨가 어떤 작은 것에 불편해 하고 있을 때 그 미묘한 표정변화를 놓치지 않고 민옥씨를 놀려댄다.
그럴 때 민옥씨는 불편한 마음을 표출할 명분을 진환씨에게서 찾는다.
그럴 때는 민옥씨의 꼭지가 도는게 살짝 보이는 듯 하다.
진환씨가 내 부모를 해한 원수라도 되는 듯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화를 뿜는다.
사냥개가 사냥감의 숨통이 끊길 때 까지 물고 놓지 않는 것 처럼 진환씨가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개지랄을 떤다.
넉다운 된 진환씨를 보고서야 민옥씨는 정신이 돌아온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화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순간 악마의 마음을 품고 악마의 모습을 했던 자신에 대한 회의를 느낄 뿐이었다.
민옥씨는 오늘도 불편하다. 오늘도 우아하지 못했다.
#에세이 #유즈풀 #그냥하고싶은것들의쓸모
'삶의 감수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노빌딩, 303호 (0) | 2018.06.02 |
---|---|
낯선 2n세에 대한 회고 (0) | 2018.06.02 |
시간들 속 순간들 (0) | 2018.06.02 |
내 맘같지 않은 일생 (0) | 2018.06.02 |
그런 눈으로 보고 있을 줄 알았어 (0) | 2018.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