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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사무실 출근을 했다. 마침 역시 오랫동안 파견을 나갔던 과장A도 사무실을 찾았다.
친하지도 않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도 없는 사람이라 과장된 반가움을 연기해 인사를 나누었다.
과장A는 늘 나의 결혼을 걱정했는데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아이고, 대리님 결혼은 언제하십니까”
“아이고, 과장님 할 때 연락드릴게요”
걱정하는 척 나의 불행을 가늠해 보는 야비한 과장A와의 대화를 오늘도 어색하게 넘겼다.
자주 볼일 없는 사람이 볼 때마다 하는 쉰소리라 개의치 않았지만 어쩐지 돌아오는 마음이 개운하지 않다.
내 나이와 연애를 해온 햇수를 듣고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은 많다. 실은 나도 나 자신에게 묻는다.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이 물음 앞에선 스스로도 매번 헷갈리고 만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서’라는 나름의 이유를 찾았지만 방심하는 사이 금새 흔들리고 만다.
또 ‘그냥 좋아서’라는 대답은 수많은 다른 의견 앞에 매번 힘을 잃고 만다. 그렇게 괜히 멍해지는 하루를 보내고 만다.
‘올 때가 됐는데’ 하고 있다보면 어김없이 울린다. 오후 네시 반이면 어김없이 울린다.
“옥아, 나 이제 끝났어. 이제 차탔어, 갈거야”
짧은 통화를 마치면 저녁 밥을 준비한다. 오늘의 메뉴는 엄마가 고이 모셔두었다 준 묵은지 김치찌개를 끓이려고 한다.
미리 맛좋고 비싼 돼지고기도 사다 두었다. 쌀뜬물로 끓이려고 밥도 새로 앉혔다.
계란말이도 부치고 미뤄놓은 설거지도 해치우고 나면 ‘따릉따릉’하고 자전거 차임벨 소리가 들린다.
(차를 애지중지 하는 배선생은 자전거로 6~7분 거리에 있는 거주자우선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자전거로 주차장까지 오간다.)
배선생이 왔다. 현관문을 활짝 열고 나가 자전거 자물쇠를 채우는 배선생을 내려다 본다.
배선생은 국위선양이라도 하고 온 사람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가슴을 활짝 펴고 한 쪽 손을 높이 흔들어 보인다. “어서와, 밥 먹자”하고 식탁에 앉는다.
보통은 TV앞에 밥상을 펴고 나란히 앉아 밥 먹지만 배선생이 힘들었을 것 같은 날이나 내가 조금 지치는 날엔 식탁에 밥을 차려 마주보고 먹는다.
허겁지겁 밥 반공기로 허기를 채우고 나면 나머지 반공기는 두런두런 얘기하며 먹는다.
하루를 지치게 만드는 건 보통 회사놈들이라 대게는 회사놈들 욕을 하며 먹는다.
그러나 과장A와의 일은 꺼내지 않는다. 마주보며 맛있는 밥을 해먹고 해먹이는 이 의심할 수 없이 행복한 순간에 그런 얘긴 아무것도 아닌게 된다.
매일 정시에 퇴근해 한눈 팔지 않고 나의 밥을 먹으러 달려오는 배선생을 보면 그런 얘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우리는 단지, 그저, 마냥 스스로이고만 싶다. 누군가의 아내, 남편, 며느리, 사위, 엄마, 아빠가 되기엔 조금 더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다.
결혼도 임신도 출산도 양육도 그저 칠판위에 걸린 교훈처럼 와닿지 않는다. 교훈 아래 우리는 기꺼이 불량학생이고 싶다.
가끔은 초조해지고 뒤쳐지는 감각에 불안하지만 우리는 서로 하나만큼은 분명히 가졌으니 아직은 좀 더 우리만의 행복을 우리만의 속도로 누리고 싶다.
#에세이 #유즈풀 #그냥하고싶은것들의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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