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감수성

몸과 함께

bl☺︎g 2018. 6. 2. 16:59

내 몸이 싫었다. 싫었다기 보다 ‘나’라는 존재 안에 몸을 포함시켜주지 않았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 중에서 내 몸이 제일 맘에 안 들었으므로. 

그렇다고 내 몸을 내 마음에 들게 바꾸는 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생각만으로도 무기력해졌다. 

대신 빠르고 간편한 정신승리 쪽을 택했다. 


길 가다 지나치는 유리창에 나를 비춰보지 않았다. 

몸에 대한 대화를 피했다. 

내 몸이 아닌 척, 나는 몸이 없는 척, 두 손으로 내 눈만 간신히 가리고 살았다. 

그동안 내 몸은 점점 커졌고 상했고 쓸쓸해졌다.


정신도 이상해졌다. 분명히 존재하는 무거운 몸을 하염없이 부정하고 외면하기엔 정신이 버텨내질 못했다. 

늘 예민하고 스트레스가 가득 찼다. 어쩌면 아무도 주지 않았을 상처들을 능동적으로 빼앗아 들고는 스스로 상처 입었다. 


그러는 와중에 나와 내 몸 사이의 거리는 걷잡을 수 없이 멀어져 갔다. 

몸에 대한 감각은 점점 무뎌져 몸의 모양뿐만이 아니라 몸의 기능에 대한 의심도 커졌다. 

15초 남은 횡단보도를 건널 자신이 없었고 방금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을 잡아탈 자신이 없었다. 

좁은 테이블 사이를 지나갈 자신이 없었고 사람 많은 엘리베이터에 자신 있게 오를 수 없었다. 

내 몸이 마치 만질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어둡고 어두운 우주 같았다. 

운동을 하고 싶었고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역시 자신이 없었고 운동을 하는 동안의 우스꽝스러운 내 몸을 상상하면 이미 수치스러웠다.


그러다 작년 6월 아주 조금 나 자신에게 너그럽던 짧은 동안의 어느 날, 뚜벅뚜벅 걸어 동네의 복지 회관에 찾아가 

에어로빅 수업을 신청했다. 흥과 활력이 넘치는 운동이라는 생각에 오래전부터 흠모하고 있었다. 

운동을 시작한다는 건 뭔가 큰 결심을 이고 지고 불같은 의지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민망하게도 자연스럽고 일상적이었다.


그럼에도 첫 수업 날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온 사방이 거울이었고 온 사방이 눈이었다. 

평균연령 대가 못해도 마흔 중반은 될 수업에서 나는 매우 어렸고 매우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형광 핑크색으로 위아래를 맞춰 입은 이모, 

세상 모든 빛을 빨아들일 듯한 반짝이 상의에 나풀거리는 프릴 미니스커트를 매치한 이모, 

과감한 브라탑으로 풍만함을 자랑하는 이모. 

어리다는 걸 빼더라도 그 사이 시커먼 운동복을 입은 커다란 나는 단연 낯선 이였고 그날의 핫이슈였다. 

그래도 모두 나를 못 본 척해 주었다. 오랫동안 신입회원을 받아온, 짬에서 나온 바이브랄까. 

과도한 관심은 젊은 사람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걸 아는 젠틀한 이모님들이셨다.


말초신경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비트가 시작되자 모두 각자의 자리에 섰다. 

합숙훈련이라도 받아온 사람들처럼 칼각를 자랑하며 한곡 한곡 멋지게 뛰었다. 

나는 숨을 헉헉댈 시간도 없이 생명을 소진해 가며 필사적으로 따라 했다. 

정수리에서 샤워기를 튼 듯 땀이 내려 눈이 계속 따가웠고 종아리는 딱딱하게 굳어지다 못해 터져나갔다. 

어렸을 때 벌 설 때 왜 팔을 들라고 했는지 알았다. 팔을 높이 든다는 건 정말 힘이 많이 들고 아프다. 

쉴 새 없이 팔을 뻗치고 뛰고 엉덩이를 흔들고 배를 튕겼다. 

50분의 수업 동안 못해도 중간중간 5분씩은 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웬걸, 강사님은 한 곡이 끝나기 무섭게 다음 곡을 틀었고 

나 빼고 모두 재부팅 된 기계들처럼 통통 잘 뛰었다. 

다행인 건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을 수치스러워할 틈이 없었다.


처음 몇 달은 고통스럽고 힘든 만큼 하루하루 운동가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되도록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출근을 하면 못해도 8시간은 있다 와야 하는데 이건 50분만 갔다 오는 거니 얼마나 좋니’하며 출근하는 마음으로 다녔다. 

무더위에도 한파에도 운동 갈 시간이 되면 그저 나섰다. 

그리고 매일매일 조금씩 내 몸과 가까워졌다.


처음엔 극심한 운동 피로 때문에 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종아리와 발목은 어느 날 고장 나버리진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차츰 운동 근육이 늘어나고 하루의 운동에 필요한 체력이 길러지고 나서는 그날그날의 컨디션을 느낄 수 있었다. 

어깨가 아픈 날과 목이 뻐근한 날, 발목이 가벼운 날과 머리가 맑은 날. 

몸을 느낄 수 있으니 그에 맞게 몸을 돌볼 수도 있어졌다. 

그리고 문득 몸이 기특하고 대견했다. 


그렇게 하루 50분, 매주 5번, 1년 5개월간 미련하게 성실하게 다녔다. 

요즘은 거울을 보는 일이 자연스럽다. 여전히 맘에 안 들긴 하지만 피하거나 거울에 비친 몸을 부정하지 않는다. 

조금씩 달라지는 부분을 발견하면 놀랍다. 나도 모르게 소액으로 자동이체되어 쌓여온 저축이 목돈이 되었을 때처럼 

새삼 시간과 꾸준함의 가치를 깨닫곤 한다.


지난달 생일을 맞아 자전거를 샀다. 매일매일 운동을 갈 때마다 타고 밤마실 나갈 때도 탄다. 

커브를 돌 때도 좁은 길에서 자동차를 만났을 때도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운전해 나간다. 

넘어지거나 발목을 삐끗할까 봐 잘 뛰지도 않던 나였는데 

이제 내 몸뿐만이 아니라 나를 태운 자전거까지 컨트롤 가능하다는 생각에 감개가 무량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몸과 함께 하는 여러가지가 즐겁다. 

앞으로 내 몸으로 수영도 배우고 싶고 짧은 마라톤 대회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

이제 내 몸도 나다. 



#에세이 #유즈풀 #그냥하고싶은것들의쓸모